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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가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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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244회 작성일 20-01-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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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인턴은 헤헤 웃으며 진짜 왔다 꺄하하하 하면서 즐거워했다.

 

한눈에 봐도 많이 마신 것 같다.

 

"너 미쳤나봐 진짜. 일단 집에 가자. 집이 어디쯤이랬지?"

 

인턴은 오늘 선배님과 술을 한잔 찐하게 먹고 싶다며 한잔 더 하러 가자고 보챘다.

 

아... 오늘 하루 피곤해서 얼렁 자야 하는데 미쳐버리겠다.

 

"김기사 너 좀 많이 취했어. 한잔 더 하는 건 무리고 일단 너네 집 가자. 주소좀 말해봐."

 

인턴은 입이 뾰루퉁 나와서 입술을 조그맣게 오무리고 한숨 포옥 쉰다.

 

얼라리요?

 

"오늘 나 보고 싶어서 지금 이 시간에 오신거 아닌가여?"

 

"응 아냐. 니가 걱정되서 나온거도 있지만 너 이러고 있다가 무슨 일 생기면 오늘 단체로 영화도 보고 술도 먹고 했는데 현장에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왔어. 자 어서 일어나 가자."

 

"내가 그렇게 신호를 줬는데 왜 못알아봐요?"

 

못알아보긴. 그걸 다 철벽처럼 우주방어했지.

 

"미안한데 우리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 일단 너 집에 가서 자는게 우선순위같다. 집이 XX동이라 했지?"

 

"나.. 선배같이 나에게 안넘어 온 사람 처음봐요."

 

그거야 니가 공대 아름이니까 그렇지. 사회로 나와서 눈을 뜨면 학교다닐 때의 너의 모습이 니 인생 최애 였다는 것을 알게 될껴.

 

"응 난 지금 복잡하고 누구를 만나고 그럴 상황은 아냐. 그리고 나는 너에 대해서 관심이 조금도 없어 미안."

 

 

 

인턴 김기사는 다시 한번 한숨을 포옥 내쉬며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알았어요 일단은. 그리고 자꾸 임기사님하고 저 엮어주려고 하지마요. 저 다 알아요."

 

".. 그래. 뭐 그건 알았어. 일단 택시타자."

 

겨우 택시를 잡아 인턴의 집으로 향했다.

뒷좌석에 둘이 나란히 앉아 서로 창밖을 바라보며 말이 없다.

 

갑자기 인턴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냥 이대로.. 있어줘요."

 

그러다가 손 깍지를 끼고 꼭 붙잡았다. 아이 참..

오랜만에 잡은 여자손은 곱디 고왔고 나의 동맥은 내 생각과 다르게 점점 강하게 요동을 쳤다.

 

그것은 이성은 내 생각을 지배하지만 내 감정이 단순 육체적인 흥분에 맥박이 뛰는거고 연애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여자와 손을 맞잡고 있어서 그런거다 라는 자기위안을 해보지만 어쨌던 묘한 기분으로 그렇게 인턴의 집으로 향했다.

 

택시는 교대 앞 주상복합 앞에 섰고 난 기사님께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그녀가 내릴 수 있게 먼저 내렸다.

 

그녀가 내리고는 고마왔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하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멀쩡히 잘 걷네. 

여우같은 것.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고 택시비만 삼만오천원이 넘게 나왔다. 아우 돈아까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아까 그 택시 안의 손깍지 낀 장면이 떠오르며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아 이 감정 뭐래.. 참..

 

애써 잠을 청하고 다음날 아침 힘겹게 일어났다.

 

여느때와 같이 출근은 했지만 어제의 삽질로 많이 졸리다.

 

인턴 김기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멀쩡하게 출근해서 까르르 웃으며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일을 했다.

 

아.. 너도 건축과지. 설계한답시고 맨날 야근을 밥먹듯이 했으니 이틀 밤 새는 것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겠지.

 

임기사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는 않았지만 인턴 김기사에게 사무적으로 대했다.

 

인턴도 당연하다는 듯 그런 임기사를 게의치 않았고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나란 동물은 그저 성욕이 두뇌를 지배하고 감정싸움에는 서툰지라 자꾸 택시 안에서의 일이 떠올랐고 아 저리 나오는데 한번 만나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며 혼자 망상에 빠졌다.

 

하지만 이 여우같은 인턴은 그 날 이후로 절대 나에게 꼬리를 치거나 추파를 던지는 일이 없었으며 그것이 오히려 나를 애타게 했다.

 

왠지 모르게 적당한 키가 좋았고 똥글뱅이 안경을 쓴 모습도 이뻐보였고 몸매도 좋아보였다.

 

그러나 임기사에게 그런 맘 없다고 했었고 나 스스로도 이건 아니야 라는 맘으로 그런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고 헤어진 여자친구가 다시 돌아오면 지금 이런 감정은 다 싸그리 잊혀지겠지 하며 야릇한 이 감정을 저 깊이 숨겨버렸다.

 

일부 구간이지만 굴착 저면이 나오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버림치고 기초 타설 준비를 하느라 바빠지기 시작했다.

 

잔여 토공사는 인턴 김기사가 나름 훌륭하게 업무를 진행 중이었고 감리 토목 이사는 인턴 김기사가 검측만 나가면 무조건 ok였다.

 

난 박과장을 따라 이공구 골조업체 업무를 같이 처리했고 박과장은 조만간 공구장이 새로 올테니 조금 힘들더라도 참고 일하자고 했다.

 

발파를 신나게 했던지라 파쇄암을 백호가 부지런히 긁어내는데 계속 돌맹이가 걷혀진다.

레벨을 찍고 확인해보니 버림 타설이 100mm로 잡혀 있는데 구간별로 400mm까지 나오는 구간도 있었다.

 

그러게 신나게 발파할 때부터 알아봤다.

 

토목업체가 콘트리트 값 일부를 부담하고 버림으로 메꾸기로 했다.

 

온통 영구배수 공법이라 드레인 매트를 깔고 집수정 자리로 다발관을 연결한 후 부직포를 사부작 사부작 깔아갔다.

 

아 저렇게 얇은 다발관이 어떻게 땅에서 올라오는 물들을 처리할까..

 

막상 시공할 때는 빈약하기 짝이없고 하중을 견딜까 어쩔까 참 궁금했었다.

나중에 기초타설이 완료되고 지하가 마무리 된 시점부터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실감은 했지만.

 

골조업체에서 펌프카가 들어와 세팅하고 레미콘이 한대 두대 들어와 버림을 쳤다.

 

하얀 부직포가 회색빛 콘크리트로 덮히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구나.. 생각이 들면서 아직 남아있는 굴착구간들을 보며 저건 또 언제 다 하지.. 생각이 들었다.

 

첫 콘크리트 타설이라고 조촐하게 회식같은 것을 했다. 이미 일공구가 먼저 버림치고 기초 배근 중이었지만 이공구는 처음이다.

 

왁자지껄 재밌게 소주 한잔씩을 하고 팀장님은 또 중동 경험담을 꺼내신다.

 

인턴 김기사는 이과장에게 했던대로 맞장구를 쳐주고 추임새를 넣으며 팀장님의 기분을 하늘 끝까지 솟구치게 해주었다.

 

일차가 파하고 팀장님이 이차로 노래방을 외쳤고 다들 콜! 하며 가려 했는데 인턴이 문제였다.

 

팀장님 성격상 노래방을 가도 도우미는 절대 부르지 않지만 그 누구도 여직원 그것도 공사팀 여직원하고 노래방을 가 본적이 없어 눈치들만 보고 있었다.

 

"뭐해요? 빨리가요!!"

 

인턴 김기사는 팀장님 팔짱을 끼고 앞서갔고 모두들 어..어... 하며 따라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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