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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가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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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243회 작성일 20-01-1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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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라인드 건설엔지니어

[아니 괜찮아. 그나저나 곧 그만두고 복학한다니 축하해 화이팅!]

 

생전 영업 문자라고는 받아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그래서 휴대폰이 고장났다고 거짓말도 했었고... 다희와 나체로 둘이 비스듬이 껴안고 두런 두런 얘기하던게 떠올랐다.

 

포근하고 안정됐던 그 느낌.

 

그렇게 문자를 주고받다가 어느날 다희가 한번 만날래? 라고 제안을 했고 심심하기도 했고 그 느낌도 떠올라서 덜컥 수락했다.

 

만날 장소와 약속을 며칠후로 정하고부터 다희로부터 주기적으로 전화가 왔다.

난 편한 이성친구처럼 전화를 받았고 내가 무엇을 했는지 오늘 무슨일이 있었는지 얘기를 했고 그런 나의 소소한 노가다 얘기를 다희는 즐거워하며 들어줬다.

 

통화시간이 갈수록 길어지고 처음엔 십여분 남짓 전화가 두시간까지 했으며 이게 지금 사귀는건가 싶을 정도로 시시콜콜한 얘기도 나눴다.

 

랑데뷰날 대학로는 한산했다.

나도 일이 끝나고 다희도 약속이 있다고 해서 아홉시경 베스킨 라빈스 앞에서 만났다.

어릴적 미팅할 때 자주 만나던 장소였다.

 

조금 기다리니 다희가 내게로 걸어왔다.

처음엔 몰라볼 정도로 수수하게 입고 나타나니 깜짝 놀랐다. 진한 화장과 몸매가 드러나는 홀복을 입었던 다희를 생각하며 기다렸는데 엣되보이는 대학생이 내 앞에 딱 나타나서 오빠! 하는데 나를 부르는게 맞나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었다.

 

다희는 아이참 그새 못알아보는거야? 하면서 내 팔짱을 꼈고 배고프다 맛난거 먹으러 가자 하면서 나를 끌고 갔다.

 

성대 가는길 건너기 전에 있는 골목으로 가니 코지한 느낌의 스파게티집이 나왔고 둘이는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연인들처럼 자연스레 대화를 나눴고 다 먹고 난 후 근처에 있는 조그만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실 오늘 나올 때 다희랑 섹스를 생각하지 않은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 앞에는 옅은 화장을 한 대학생이 앞에 앉아 있었고 우리의 대화도 그런것도 아니었고..

 

얘는 그냥 나를 편한 동네오빠정도로 생각하나보다 하고는 포기한 채 동네오빠와 같이 포근하게 대해줬다.

 

시간이 꽤 지났고 우리는 커피숍을 나섰고 다희는 집이 창동이랬다.

 

"데려다줄까 꼬맹아?"

 

"아냐 데써 오빠 집이랑 반대잖아. 오늘 오빠랑 얘기를 하고 데이트를 해서 즐거웠어."

 

다희는 지하철을 타러 갔고 난 버스를 타러 갔다.

 

뭐 나쁘진 않았다. 간만에 다섯살이나 어린 여자와 대화도 하고 밥도 맛난거 먹고.

 

다희와는 그 후로도 하루에 한번씩 전화를 했고 어느날 다희가 말했다.

 

"오빠는.. 나 만나면 나랑 하고싶지 않아?"

 

"음.. 하고싶어. 근데 뭐 내가 그렇게까지 하고싶은건 아니고 너도 그런쪽으로 생각하고 있는거 같지 않아서."

 

꼴에 점잔을 떨었지만 하고싶었다.

 

"난 오빠가 우리 만난 날 막 하자고 그럴줄 알았거든? 그리고 그랬다면 나도 못이기는 척 하려했지. 근데 정말 친한 오빠처럼 다정하게 대해주니 그게 너무 좋더라."

 

다희는 자기가 룸싸롱에서 일했던거 아무도 모른다며 이렇게 친한 사람중에 오빠가 유일하다고 했다.

 

그리곤 자기는 대학을 마치면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다.

 

다희랑은 사귀는것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그러고 며칠 후 만나서 밥을 먹고 사랑을 나눴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귀자는 말은 안했고 나도 그리고 다희도 사귀는 사이가 아닌 그런 관계로 유지되며 우리는 그 후로 꽤 오랫동안 만났다.

 

봄이되고 다희는 복학을 했고 여느 대학생들처럼 학교생활을 했고 난 나대로 현장일이 바빴다.

 

이제는 최대리랑 좀 더 친해져서 그의 허세와 무례함쯤은 넘길 수 있게 되었고 현장 규모가 있기 때문에 공채 후배도 들어오고 계약직 직원도 더 보충됐다.

 

조대리와 나 그리고 신입사원 이기사는 셋이 타워 두개와 포디엄을 담당했고 난 첫 나의 쫄따구에게 진심을 다 해 가르치고 알려줬다.

 

다행히 곧잘 따라오고 서글서글하니 적응속도도 빠르다.

 

내때는 임마.. 알려주는 사람 암도 없었어 하면서 기초부터 하나씩 알려줬고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지만 일년전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가 궁금해했고 가려웠던 부분을 알려주니 좋아했다.

 

현장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매일 타설이 두세군데씩 있었고 현장에는 패트롤팀이라고 안전팀 직할로 생겼고 주황색 소방복 같은 옷을 입고 호루라기를 불며 안전 계도를 하고 벌점을 메기곤 했다.

 

때로는 내 공정에 침범하여 안전미비 사항으로 진헝이 안된다고 멈췄으며 그 때마다 아직 어렸던 나는 업체편이 되어 패트롤들하고 각을 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척이 없지만  그 때는 뭔가 내게 주어진 업무를 빨리 처리하는게 미덕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나도 남들처럼 유능하게 빨리 업무를 하고 싶었다.

 

좌충우돌 현장을 누비던 그 때 좀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최대리가 담당하던 코어에서 철근검측이 끝나고 기전 배관 작업 전 폼을 닫아버렸다.

최대리는 본때를 보여준다는 식으로 기전팀이 자기 스케줄에 잘 따라오지 않자 막무가내로 폼을 닫고 타설할꺼라면서 큰 소리를 쳤고 평소에 조용하던 설비과장은 사무실로 들어와 헬맷을 집어던지며 최대리에게 소리쳤다.

 

"너 이새끼야 두고 보고 있었는데 내가 계약직이라고 무시하는거야 뭐야!"

 

"내가 시간 줬습니까 안줬습니까?"

 

"사정설명 해주고 반나절만 기다려달라고 했잖아! 니 일도 중요하고 업체 사정도 알겠지만 코어에 슬리브 빼먹고 치면 나중에 어찌하려그래!!"

 

"코어링 하세요 알아서."

 

설비과장은 씩씩대고 아이 씨발 좆같은 새끼 하며 현장을 나가버렸고 조용하던 사무실이 순간 들썩였다.

 

팀장님은 상황을 보시더니 최대리를 자초지종을 물었고 최대리는 그 동안 자꾸 시간안에 안하고 지연시켜서 본때를 보여주는 차원에서라도 닫았다고 했다.

 

팀장님은 최대리를 한참 보시더니

 

"뭐? 본때를 보여준다고? 이기 미칬나 같은 직원들끼리 뭘 보여줘?"

 

인내심 테스트 하지 말고 폼 열고 작업시간 주라했다. 어찌됐건간에 일이 지연되는게 있으면 서로 합심해서 땡기고 맞추는게 맞는거고 남이 지연시켰다고 너것만 해버리는건 아주 잘못된 행동이니 그 점을 고치라 하셨다.

 

하지만 최대리는 묵묵무답으로 서 있었고 결국 팀장님은 폭발했다.

 

평소에 조용하시던 팀장님이신데 한번 화를 내니 무섭다. 최대리는 거기의 굴하지 않고 서 있었다.

 

뭐 저런 깡이 다 있지...

 

결국 팀장님은 회의중인 박차장을 소환했고 너 애들 관리가 이리 개판이니 재가 저리 지 멋대로 행동하는거 아니냐며 박차장을 혼냈고 박차장은 업체를 불러 직접 폼 열게끔 지시한 후 설비과장을 찾았지만 이미 현장을 나서 전화도 안받는다.

 

설비팀장하고 박차장은 조율을 했고 설비작업은 마무리가 됐고 폼은 다시 닫혔다.

 

최대리는 그게 그렇게 분한지 씩씩대며 설비 이 개버러지같은 새끼들! 하며 현장으로 나갔고 한참을 들어오지 않았다.

 

왜저러나 싶을 정도로 최대리는 무모하게 팀 화합에 도전을 했고 그날 이후 최대리는 틈만나면 지기는 이런 말도 안되는 곳에 안있고 딴데 갈꺼다 외치며 다녔다.

 

나도 덩달아 일도 지치고 다희랑의 관계도 시들해지는 사이에 채용공고를 보게됐다.

 

교직원..

 

경기도에 있는 대학교 시설직 채용 공고다.

 

이제 일년 좀 넘었는데 앞으로의 내 미래를 그려보니 계속 이런일을 하는게 딱히 반갑지도 않고.. 해서 지원했다.

 

며칠 후 문자가 왔다.

 

서류전형 통과했으니 언제 실기를 보러 오라는 문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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